시가있는 창

호수, 강가에서, 낙화 - 이형기 -

봄나래 ~ 2018. 8. 9. 17:35






     호 수  - 이형기 -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했던 청춘이

    어느덧 잎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세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가는 바람에도

    불고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 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강가에서 - 이형기 -


    물을 따라

    자꾸 흐를라 치면


    네가 사는 바다 밑에

    이르리라고


    풀잎 따서

    작은 그리움 하나


    편지하듯 이렇게

    띄워 보낸다









    낙 화  - 이형기 -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걱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사랑, 나의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