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에게 가는 길, 봄날은 간다 - 안도현 -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다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또 사랑이란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에게 가는 길 - 안도현 -
그대가 한자락 강물로 내 마음을 적시는 동안
끝없이 우는 밤으로 날을 지세우던
나는 들판이 었습니다.
그리하여 밤마다 울지 않으려고
괴로워하는 별을 바라 보았습니다.
오래오래 별을 바라본 것은
반짝이는 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어느날 내가 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헬 수 없는 우리들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상의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길들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해 뜨는 아침부터
노을 지는 저녁까지
길위로 사람들이
쉬지 않고 오가는 것을
그대에게 가는 길이
들녘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 이랍니다.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 신문문예 당선
봄날은 간다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 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 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나는 흐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 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 피우던 그가 그기 타고 있을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