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창

수선화 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낙화 - 정호승 -

봄나래 ~ 2022. 6. 14. 21:30

 

 

 

 

 

 

      수선화 에게 - 정호승 -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오면 빗 길을 걸어갈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가난한 사람에게 - 정호승 -

 

 

 

      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

 

      창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

 

      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마음 하나 창밖에 걸어 두었습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

 

      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 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낙 화 - 정호승 -

 

 

      섬진강에 꽃 떨어진다.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결코 향기는 팔지 않는

 

      매화꽃 떨어진다

 

 

 

      지리산

 

      어느 절에 계신 큰스님을 다비하는

 

      불꽃인가

 

      불꽃의 맑은 아름다움인가

 

 

 

      섬진강에 가서

 

      지는 매화꽃을 보지 않고

 

      섣불리

 

      인생을 사랑했다고 말하지 말라